:

트로트 유감  

나는 유독 트로트를 싫어한다. 우선 트로트는 딴따라 풍의 가벼운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트로트 노래 가사들이 별로 그렇게 건전해 보이지도 않는다. 지나간 세월을 후회한다든지 짝사랑을 아파하는 등등의 노래인데 거기에 마음을 담아 부르는 가수들의 모습도 내게는 그저 거슬리기만 했다. 어쩌다 시장 골목길에서 듣게 되는 트로트는 육체의 정욕을 따라 부르는 경건치 못한 노래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우연히 KBS 아침마당 프로그램을 보다가 예상 밖에 트로트 노래를 접하게 되었고, 왠지 트로트에 대한 생각을 자꾸 해보게 되었다. 내게 있어 오래 전에 시청한 적이 있는 ‘아침 마당’은 간혹 의사들이 건강 상식을 전해주거나 유명인사가 나와 자신의 삶의 스토리를 진솔하게 나눈 것으로 기억되는데 요즘은 많이 바뀌어 트로트 노래 대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의 참가자는 먼저 자신의 어려웠던 삶을 나누고 어머니를 참석하게 한 다음 노래를 하는 것이었다. 남녀 사회자들과 코미디언, 그리고 초청가수가 나와 분위기를 따뜻하고 활기 있게 해주며 격려의 말을 해주는 것이 아주 감동적이었다. 노래에 대한 채점은 시청자들이 하는데, 노래 실력보다는 환경의 어려움을 가장 많이 겪어온 사람에게 후한 점수가 가는 듯했다. 그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트로트를 가볍게 여기며 싫어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KBS 아침 마당 트로트 이야기를 사무실의 행정목사에게 꺼내봤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트로트에 관계된 정보를 알려주는데, 요즘 젊은이들 세계에서 다시 트로트 붐이 일어나고 있다며 한 젊은 감리교 목사는 아예 트로트 가수로 활약하고 있다고 했다. 곧바로 인터넷에서 그 젊은 목사의 노래를 들어보니까 전형적인 트로트 가수의 차림으로 복음 가사를 곁들여 현대 춤과 함께 트로트 노래를 부르니까 일단 재미있었다. 그야말로 처음 듣는 트로트 찬양이었다.  

그 트로트 목사의 간증도 특이했다. 자신은 별로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기도를 해보면 “뽕짝이 네게 족하도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트로트를 하게 된 계기는 학생들 수련회에 따라와 음식 봉사를 하던 4-50대 교회 성도들 때문이었단다. 그들은 음식 봉사뿐만 아니라 자기들도 좀 흔들고 가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다며 그들을 위해 트로트풍의 찬양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은 목사로서 그들의 영혼을 위해 수고한 것이라며 “당신의 영혼을 위한 사명은 어디서 온 것이냐?”라는 도전의 말로 간증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김호중 가수가 부른 CCM 몇 곡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어느 권사님이 동영상을 보내준 것인데 아주 성량이 좋은 가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에 말을 꺼내보면 하나같이 김호중은 트로트 가수로 인기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세속적인 노래를 부르면서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할까 해서였다. 그런데 그 권사님이 김호중의 CBS “새롭게 하소서” 간증 동영상을 다시 보내주므로 그런 걱정도 사라졌다. 그에게는 아주 귀한 간증이 있고 믿음이 좋은 후견인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김호중의 찬양에도 트로트의 색깔이 나타나면서 더욱 호소력이 있어 보인다. 특히 그가 부른 곡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는 한국의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CCM 곡으로 트로트의 색깔이 아주 진한 곡이다. 결국 트로트도 대다수 한국인이 좋아하는 대중음악의 중요한 장르인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말씀(딤전4:4)도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선교한다고 타문화권 이해를 중시하면서 정작 한국의 문화를 도외시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마침 누리호의 성공적 발사 소식으로 온 국민이 한껏 고무되어 있던 차에 혹시 나처럼 트로트에 마음을 굳게 닫았던 사람이 있다면, 한국인만의 대중음악 세계를 도외시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인이 가는 곳에 항상 김치가 있듯이 한국인들이 모이면 거기에 또 트로트가 있는 것이다.